"니가 여기 있어?"
"야, 니가 여기 있어?"
나는 그녀가 막 회사 현관을 나서는 순간, 횡단보도 반대편에서 손을 흔들었다. 한밤중. 스모그 속 조명이 내 얼굴을 창백하게 비쳤을 테지만, 나는 웃었다. 아니, 찢어질 듯이 웃었다.
난 오늘만 3시간째 이 자리에 있다. 네가 나올까 봐.
그녀는 눈을 깜빡였다. 머리 스캔하듯 훑는 시선이 살짝 떨렸다. "어... 왜?" 그 짧은 두 음절에 나는 배신당한 사슴처럼 숨이 멎었다. 아니, 사실은 감격했다. 오늘 하루 종일 휴대폰을 붙잡고 그녀의 위치를 스토킹하느라 눈이 퉁퉁 부었다. 지하철 노선도를 외워, 점심에 어디서 누구와 무슨 샐러드를 먹었는지 알아냈다. 그런 다음, 출근길에 맞춰 새벽 4시에 샤워하고, 5시에 머리를 말리고, 6시에 첫 버스를 타고 이곳에 왔다.
이건 미친 짓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그녀가 잠시 멈칫한 순간, 내가 눈에 들어왔다는 걸.
욕망의 해부
왜 하필 그녀여야 했을까?
내 안의 어둠은 단순한 '좋아함'이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엘리베이터 미러에 비친 내가 너무 초라해서, 그 반사를 부숴 버리고 싶은 날이 많았다. 그녀는 그 미러를 대신해 주는 유리일지도 모른다. 내가 보고 싶은 나를 비춰 줄, 스크린.
집착은 자기 증명의 변형이다. 사랑하는 대상을 통해 ‘나는 특별하다’는 서류를 날인받으려는 시도. 한편으로는 자기 파괴의 연속. ‘이 정도면 미쳤다’는 낙인이 찍히면 찍힐수록 오히려 안도가 되는 이유는 뭘까? 미친 것만이 드러나면, 내 진짜 초라함은 가려지니까.
첫 번째 사례: 준혁의 27일
준혁은 그녀가 좋아하는 작가 사인회 날, 새벽 2시에 서점 앞에 도착했다. -10도. 눈발이 날렸다. 그는 자신의 하얀 손에 검은 매직펜을 들고, 그녀에게 줄 팜플렛마다 작가 시그니처를 위조했다. 두 시간 동안 87장. 눈이 시려 떨릴 때마다 그녀에게 줄 거라는 상상으로 손가락을 녹였다.
"이건... 진짜 사인이야?"
그녀는 놀랐다. 눈이 반짝였다. 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는 진심으로 그 서명을 그녀에게 주고 싶었으니까. 그녀는 팜플렛을 받고 웃었다. ‘이 사람, 나를 위해 뭔갈 준비했네.’ 그 착각을 준혁은 평생 가슴에 품었다.
두 번째 사례: 수진의 메모
수진은 그가 다니는 헬스장 락커 키 번호를 알아냈다. 427. 그녀는 6개월마다 바뀌는 번호를 매번 새로 외웠다. 어느 날, 그의 락커 안에 초콜릿 한 조각과 짧은 메모를 넣었다.
‘너의 땀 냄새를 맡으면, 나는 숨을 쉰다.’
그는 처음엔 경계했다. 경비실에 신고했다. 수진은 잡혔다. 하지만 그날 밤, 그는 락커를 열 때마다 초콜릿이 생각났다. ‘설마, 그 여자?’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맛. 결국 그는 다시 헬스장을 찾았고, 카운터에서 수진을 물었다. 미소를 지으며. 이후 그들은 단 둘이 운동하는 시간을 맞췄다.
금기의 달콤함
우리는 왜 이 미친 짓에 홀린 걸까?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금기는 욕망을 증폭한다.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사랑은 지겹다. 스스로 쟁취해야 성취감이 배가된다. ‘지나친’ 행동은 내가 더 간절하다는 증거가 되며, 그 증거가 남들에게 통용될 때 비로소 존재감이 확보된다.
또 다른 이유. 우리는 ‘의도된 우연’이라는 픽션을 좋아한다. 누군가 나를 위해 세상을 비틀어 줬다는 착각. 그 착각이 곧 연애다. *‘이건 운명이야’*라는 허울 아래, 누군가의 집착이 사랑으로 승격되는 순간.
마지막 질문
그래서 너는 지금, 누군가를 위해 미치고 있니?
아니면, 너를 위해 미쳐 주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니?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눈동자 속에서, 조금이라도 더 아름다운 자신을 발견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때로는 미친 척, 찌질한 척, 연기한다.
하지만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미친 짓이 통했을 때, 너는 정말 너였니, 아니면 네가 연기한 그 누군가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