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차가운 공기, 뜨거운 숨 — 상처 없이도 그녀는 끈을 조르고 싶었다

트라우마 없이 태어난 욕망. 평범한 두 남녀가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2,000초간의 기록.

욕망금기트라우마평범감각
차가운 공기, 뜨거운 숨 — 상처 없이도 그녀는 끈을 조르고 싶었다

0초, 침묵

천장 불빛이 흔들릴 때마다 그림자가 살아 움직인다. 머리맡에 놓인 가죽 띠는 검고 윤이 난다. 시은은 누워서 숨을 죽인다. 문이 열리는 소리, 굽은 손목에 힘줄이 오르는 소리. 준혁은 입을 다물고 실타래를 꼬아 든다.

“조금만 더 세게.”
> “말하지 않아도 나는 안다.”

두 사람은 아무 사연 없이 이곳에 왔다. 가슴 한복판에 파인 흉터도, 깨진 유리 같은 기억도 없다. 그저 차가운 공기가 목끝을 간질일 뿐이다. 뜨거운 숨이 턱끝에 맺힌다. 욕망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1,000초, 하얀 방

대학로 뒷골목, ‘하얀 방’. 흰 타일 위로 빨간 실타래가 떨어진다. 시은은 유리창 너머 자신의 반사된 눈을 본다. 검은색 가죽 재킷을 맡기며 냄새를 맡는다. 담배, 땀, 그리고 아주 약간의 민트.

직원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시은은 침대에 누워 눈을 감는다. 가죽 끈이 목을 감는 순간, 턱끝이 당겨진다. 처음엔 살갗만 따끔하다. 숨이 가빠질수록 살점 아래로 열이 퍼진다. 뇌가 맑아지는 느낌, 마치 시험 시작 직전 숨을 크게 들이마시는 듯한.

“여기, 넘버링 하나만 남겨 주세요.”
> “……4.”
> “네 번째 숨을 놓기 전에 눈을 떠 봐요.”

카메라가 조용히 깜빡인다. 시은은 눈을 뜨고 천장을 본다. 그곳에는 아무 것도 없다. 공허가 뚜껑을 열고 그녀를 들여다본다. 그런데도 몸이 가벼워진다. 평범했던 하루, 말없이 지나간 지하철 광고, 배달 음식 냄새. 모든 것이 겹쳐서, 차라리 눈을 감고 싶어진다.


1,200초, 바다 위

같은 날 오후, 제주. 준혁은 파라솔 아래에서 선글라스를 벗으며 짠 바람에 눈을 부린다. 앞바다에 떠 있는 스킨스쿠버 보트, 출렁이는 파도. 그는 수영도 못했지만, 물속에서 숨이 멈추는 느낌이 환각처럼 따라붙었다.

지난주, 사무실에서 근무한 지 꼭 1,000일째 되던 날. 점심시간, 그는 회사 지하 2층 헬스장 거울 앞에서 멈칫했다. 완벽한 피부, 완벽한 키, 완벽한 미소. 그는 그 미소를 지우고 물었다.

“너는 왜 숨 쉬는 거야?”
> “그냥… 살아 있잖아.”
> “살아 있다는 게 재미있어?”

답이 없었다. 그날 밤 그는 항공권을 끊었다. 아무도 모르게, 아무 이유 없이.


1,500초, 수심 5미터

수면 아래로 내려가면 소리가 사라진다. 튜브를 물고 5미터. 준혁은 손목에 타이머를 맞춘다. 여기서 2분을 버티면 된다. 폐가 달아오른다. 귀가 울린다. 눈앞이 흐려진다.

갑자기, 물 속에서 누가 그의 발목을 잡는 듯하다. 허공을 헤엄친다. 그는 손가락으로 숫자를 센다. 하나, 둘, 셋… 넷째 손가락이 구부러지려는 순간, 뇌가 반짝인다. 살아 있다는 사실이 피부에 새겨진다. 그는 물 위로 떠올라, 처음으로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파도 위에서 준혁은 선생님에게 말한다.

“죽을 뻔한 적 없는데도, 죽을 뻔한 척하고 싶었어요.”
> “그래서 더 살아 있는 거겠죠.”
> “맞아요. 살았으니까, 끝까지.”


1,700초, 뒷골목의 냄새

밤 11시, 시은은 하얀 방을 나서며 후드집업 지퍼를 올린다. 뒷골목에선 김치찌개 냄새, 술 취한 대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뒤엉킨다. 그녀는 거리에 서서 휴대폰을 만진다. 전화를 걸지 않는다. 그냥 참기름 냄새가 코끝을 간질인다.

갑자기, 그녀는 옆집 포장마차로 들어간다. 아저씨는 라면 한 그릇을 끓인다. 시은은 숟가락을 든다. 뜨거운 국물이 목끝으로 흘러내린다. 그때서야 눈물이 난다. 눈물은 왜 흘렀는지 모르겠다. 그저 목끝이 타오르는 것 같아서.

아저씨가 묻는다.

“맵나?”
> “아니요, 뜨거워서요.”
> “그럼 식혀 먹어.”
> “괜찮아요. 뜨거운 게 좋아서요.”


1,900초, 평범에 대한 반란

심리학 교과서는 말한다. “금기적 욕망은 대부분 반복적 상처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연구실 책상 위엔 번역도 안 된 논문 더미가 산처럼 쌓인다. 상처받지 않은 사람들의 반항, 무의미에 대한 병적인 열망.

우리는 완벽에 지쳤다. 집안도, 성적도, 외모도, 연애도 흠잡을 데 없이 평탄한 삶. 그러나 평탄함은 심장이 멈추는 온도와 같았다. 누군가는 끓어오르는 물에 손을 담그고 싶어 한다. 아프지 않아서가 아니라, 아프지 않아서 아픈 것이다.


2,000초, 끝자락에서

만약 당신에게도 아무런 상처가 없다면, 당신은 무엇에 불타고 싶은가. 그 불이 끝나면, 당신은 누구의 몸으로 남을까.

시은은 집에 돌아와 거울 앞에 선다. 목덜미에 아주 연한 붉은 자국이 남았다. 그녀는 손끝으로 살짝 누른다. 아프지 않다. 그래서 또 누른다.

준혁은 숙소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본다. 내일은 아침 비행기. 그는 손바닥에 남은 짠 바람 냄새를 맡는다. 아무 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냄새가 사라지지 않는다.

차가운 공기, 뜨거운 숨. 아픈 기억 없이도, 우리는 이렇게 뜨겁게 숨을 쉰다. 그 이유를 아직 모르겠다. 다만, 모르는 채로 또 하루를 살아간다.

←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