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현금으로 하죠, 아무말도 하지 마”
촛불 하나 꺼지는 소리.
서랍 속에서 숨겨둔 봉투를 꺼내는 순간, 희수는 현기증이 살짝 날 뻔했다. 숫자만큼이나 두툼한 종이 뭉치. 이걸 건네는 동시에, 자신의 욕망이 얼마나 값어치 있었는지 냉정하게 증명되는 기분이었다.
- 네, 끝났어요?
- 응. 나는 이만 가야 해.
문이 닫히는 소리마저도 예의 없이 시원했다. 희수는 이불 위에 떨어져 있는 지갑을 들었다. 안에 걸려 있던 남편 사진을 보니, 참을 수 없는 죄책감이 아니라 미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결국 그녀는 ‘진심’ 따위를 다 떨쳐버리고 값만 정확히 치렀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욕망의 구토
연애라는 이름의 관계는 늘 뒤틀렸다. 눈이 마주치면 뭔가를 기대하게 하고, 문자가 오면 기대치가 커졌다가, 하루만 답장이 늦어도 상처받는다. 그 상처는 결국 ‘내가 얼마나 안중요한가’를 확인하는 잔인한 체험.
내가 그 사람에게 얼마나 되는 걸까.
이 질문은 도덕적이지 않지만, 그래서 더 간절했다. 사랑이란 단어는 잘 포장된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그러니까 차라리 돈으로 환산되는 순간, 더러운 욕망이 소독된다. 돈은 진심이자 거짓의 척도. 돈은 질투도, 혹은 미련도 제거하는 냉정한 살균제.
첫 번째 사례: 민우와 재영
민우는 결혼 6년 차, 아내의 출산이후 성적 긴장이 완전히 사라진 남자. 그는 화요일마다 동일한 호텔 1209호를 예약했다. 문을 두드리면 재영이 나왔다. 여느 대학생처럼, 재영은 방 안에 들어와 티셔츠를 벗기 전에 먼저 손바닥을 펼쳤다.
- 처음엔 좀 창피했죠.
- 봉투 건네고 나니까, 누가 누굴 위로해야 하는지도 확실했어요.
재영은 민우의 이야기를 30분 듣고, 남은 30분은 침대 위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서로의 욕망이 이름 없는 질식의 공백을 메웠다. 돈이 오고 가는 순간, 재영은 “아저씨, 오늘은 이 정도면 충분해요”라고 말했다. 솔직하게. 그 말이 민우에게는 위로였다.
두 번째 사례: 선영과 준호
선영은 남편의 사업 파트너였던 준호에게 5년째 ‘특별한 용역’을 제공했다. 남편이 잠든 새벽 2시, 그녀는 음산한 지하 주차장에서 준호를 만났다.
- 오늘은 얼마?
- 오십 줘요. 너무 많이 줬다 싶으면 거스름돈도 가능해.
준호는 봉투를 받고는 언제나 똑같은 말을 했다. “우리는 그냥 사업상 거래야.” 선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다름 아닌 진실. 이 거래가 끝나면 서로의 신호등이 다시 빨간불. 아무도 사랑한다고 속삭이지 않았다. 대신 계좌이체 메시지 하나가 울렸다.
왜 나는 이 냉정함이 더 뜨겁게 느껴질까.
왜 우리는 이 금기에 끌리는가
심리학적으로 금기는 강렬한 욕망을 증폭한다. ‘사랑해’라는 말이 부재할 때, 우리는 스스로를 더 확실히 드러낸다. 돈이 오가는 관계는 냉정하면서도 정직하다. 상대가 내 몸을, 혹은 나를 얼마나 원하는지 숫자로 증명되는 순간, 인간은 실수할 여지가 없어진다.
- 연애: 불확실성의 연속
- 거래: 확실한 욕망의 응답
이 간단한 대체물은 마치 낯선 도시에서 갑자기 자기 모국어가 들려온 듯한 해방감을 준다. 돈은 피할 수 없는 실재. 돈은 눈치 보지 않게 우리를 가격화한다. 그 가격은 누군가의 고마움도, 연민도 없이 오롯이 내가 얼마나 원하는지를 말해준다.
문 앞에서
내일도, 혹은 모레도 나는 돈 봉투를 들고 the same door를 두드릴까?
그 순간, 당신은 떨리지 않는 손을 확인한다.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솔직함. 손에 쥐고 있는 돈은, 사실 당신이 누군가에게 속지 않겠다는 마지막 방패막이. 과연 당신은 그 방패를 버릴 수 있을까, 아니면 계속해서 돈 주고 사는 깨끗함에 안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