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건… 우리 민우 맞지?”
아버지의 숟가락이 국그릇 옆 쌀알 위로 철렁 떨어졌다. 국물이 식탁보를 타고 퍼졌다. 어머니는 눈을 내리깔고, 큰엄마는 아들 녀석이 아직도 손에 힘을 주지 못한다는 듯 한숨을 삼켰다. 75인치 TV 속에서 나는 예능 ‘인싸룸’의 마지막 회, 엔딩 키스 장면에 등장하고 있었다. 상대는 촬영 내내 나를 ‘형’이라고 부르던 24살 연하의 배우 지석이었다. 화면은 흐릿해지기 직전, 우리의 숨이 맞닿는 것만 선명하게 잡아냈다. 그 장면은 7일 전 방송돼, 지금쯤 유튜브 조회 수 430만을 찍고 있을 터였다.
나는 차례상에 올린 손을 내리지 못했다. 떡국이 식어가는 사이, 거실에선 아무도 숟가락을 들지 못했다. 티끌 하나 떨어지는 소리마저 겹쳤다.
40일간의 집, 40초의 키스
‘인싸룸’은 합숙형 예능이었다. 여덟 명이 한 집에 머물며 매일 밤 ‘퇴출 투표’를 받는다. 나는 회사 대표가 “회사 이미지에 도움이 될 거야”라고 떠밀어 출연했다. 출연료는 커녕, 내가 회사에 빌린 장비 반납 연체가 하루 5퍼센트씩 누적되고 있었다. 돈이 아니라면 무엇이든 걸 수 있었다.
모든 인물에겐 ‘설정’이 주어졌다. 나는 ‘중소기업 대표, 이혼 3년 차’였다. 지석은 ‘대학원생, 연애 초보’. 우리는 매일 밤 시나리오를 받고, 그걸 연기하는 척 실제로 살았다. 3주 차, 작가가 나를 스튜디오로 불러 말했다.
“민우 씨, 지석이 형이라고 부르는 거 좀 이상해요. 그냥… 눈 맞는 장면 한번 넣을까요?”
그날 밤 우리는 거실 테이블 위에 어깨를 맞대고 앉았다. 카메라는 없었다. 가짜 맥주였지만, 잔을 기울이면서 나는 지석이 눈동자에 떨고 있는 내 얼굴을 발견했다. 그건 연기가 아니었다.
다음 날, 첫 키스 장면이 잡혔다. 카메라 4대, 조명 8개. 감독이 큐를 주자, 나는 지석의 손등에 살짝 손가락을 얹었다. 그 순간, 지석이 작게 웃으며 내 손을 움켜쥐었다. 레드마크. 첫 테이크에 바로 OK가 떨어졌다. 감독이 “둘이 진짜 사이 좋았네”라고 웃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녹화장 밖으로 나왔다. 복도 끝, 소화전 옆에서 나는 10초 동안 숨을 멈췄다. 그 10초가 40일 합숙 내내 내가 진짜로 살아 있던 시간 전부였다.
낯선 눈, 익숙한 눈
방송이 나가던 날, 나는 중국 출장 중이었다. 새벽 3시, 호텔 침대에 누워 유튜브 실시간 채팅을 봤다.
- ‘저 둘 진짜 사이 아님?’
- ‘형도 잘생겼고, 동생도 귀엽고… 케미 미쳤다’
- ‘근데 둘이 눈 맞은 거 실화임?’
나는 핸드폰을 껐다. 그 눈빛이 연기가 아니었다는 것도, 진짜 사랑이 아니었다는 것도 동시에 알았다. 둘 다 아니었다. 단지, ‘보여주는’ 것과 ‘느끼는’ 것 사이 어딘가에 있던, 이름 없는 감정이었다.
차례상 뒤편
아버지가 떨어뜨린 숟가락을 주워 들었다. 손등에 주름이 더 깊어졌다. 그는 내게 묻지 않았다.
“그 장면, 진짜냐?”
대신, 떡국 한 그릇을 건넸다. “뜨겁다, 조심해.” 나는 국물을 한 모금 마셨다. 짜지도, 달지도 않았다. 단지, 엄마가 매년 끓여주던 그 맛 그대로였다.
어머니는 뒷정리를 하며 중얼거렸다. “요즘 예능은 참… 진짜 같아서 놀랐어.” 큰엄마는 “그래도 우리 민우는 연기 잘하네”라고 덧붙였다. 아무도 ‘진짜’를 묻지 않았다. 그건 다행이었다. 아니면, 어쩌면 나도 모를 일이었다.
밤 11시 28분, 거실
차례상을 치우고 난 뒤, 아버지는 TV를 다시 켰다. 지석과 나의 키스 장면이 하이라이트 클립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아버지는 리모컨을 놓지 못했다. 나는 옆에 앉았다. 화면 속 우리는 한창 입을 맞추고 있었다. 40초, 짧고도 긴 시간.
아버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 친구, 너랑 같은 팀 아니었나?” “음, 그때는 아니었어요.” “지금은… 같은 팀이냐?”
나는 한참 뒤에 대답했다.
“아직도… 정하기 어려워요.”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또 한 숟가락 떡국을 입에 넣었다. 그 한 모금이 어째서인지, 40일 합숙보다 훨씬 오래 입안에 남았다.
당신은 가족 앞에서 숨겨야만 했던, 가장 치명적인 비밀이 뭐였나요? 그리고 그걸 들켰을 때 당신은 무엇을 잃었을까요, 아니면 얻었을까요? 또는, 그걸 아직 숨기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