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는 테스트기에 오줌을 떨어뜨렸다. 한 방울이 찍—하고 스며들 때 숨을 죽인다. 창백한 판 위에 두 줄이 떠오르지 않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다음엔이라는 단어가 목뒤를 할퀸다. 이게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침대 밑 서랍에는 어린 시절 모은 스티커처럼 쓰임 없는 테스트기들이 산더미다. 한 줄짜리 양성 반응이 떠오를 때마다 언젠가 목울 것처럼 차올랐다가도 어김없이 말라버리는 안쪽.
너는 왜 아기를 원해? 그건 네가 원하는 게 아니야. 생물학이 너를 속이고 있는 거야.
더 이상 속지 않기로 했는데도 나는 속았다. 피임약 봉지를 찢을 때, 오후 세 시 반 눈을 떠서 그날 또 피임을 까먹었음을 깨달았을 때도. 내가 복용하던 알약은 작고 하얗고 둥글었다. 씹으면 단맛이 났다. 이것도 사랑의 일종이겠지. 나는 매일 그걸 입에 넣으며 중얼거렸다. 이 작은 알약이 나를 지켜주겠지. 깨물며 무릎이 떨렸다. 눈을 감으면 아기의 손가락이 나의 손가락을 꼭 잡는 꿈이.
서연이는 월요일마다 병원에 갔다. 스물아홉, 결혼 삼 년 차. 남편 민석은 대기업에 다닌다. 첫 만남부터 아이 얘기를 꺼냈다. 민석의 손등에 난 털이 아기 머리카락처럼 보일 거라고 상상했다. 진료실 문을 열자 의사가 먼저 말했다. 이번엔 조금 더 크게 자랐네요. 그 말이 들릴 때마다 살아 있음을 느꼈다. 뱃속에서 뭔가가 자라고 있다는 사실에 목을 적셨다. 그러나 뱃속은 텅 빈 종이컵이었다. 아무것도 차오르지 않았다. 서연이는 오후마다 병원 복도에서 울었다. 눈물이 마르면 저녁 먹으러 가자며 민석이 손을 잡았다. 민석의 손은 차가웠다. 그 차가움마저도 서연이는 아기의 체온으로 착각했다.
다솜은 남자친구의 콘돔을 숨겼다. 서른넷, 미혼. 같은 회사 상무 재혁과 밀회를 즐겼다. 재혁이 집에 올 때마다 냉장고 서랍에서 콘돔을 하나씩 꺼내 숨겼다. 스무 장이 넘게 모았다. 재혁은 아기를 원하지 않았다. 아들 둘을 키우는 아버지였다. 그래서 다솜은 눈을 감고 재혁이 끝내려 할 때 허리를 더 세게 올려 받았다. 속으로 계산했다. 오늘은 배란일이야. 확률은 스물다섯 퍼센트. 재혁이 떨어져 나가면 베개를 배 아래에 받쳐 놓고 스무 분 동안 누웠다. 남자의 정액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다솜은 흘린 눈물을 뒤집어썼다. 언젠가 그 눈물이 아기의 눈물이 될 거라고.
임신은 금기다. 네가 원하지 않던 관계에서, 네가 원하지 않던 시기에, 네가 원하지 않던 사람과 함께 있을 때. 그런데도 우리는 몸이 미친다고 말한다. 배란일이면 피부가 달아오르고, 유방이 냄새를 맡는다. 남자의 뒷목을 보면 아기 머리카락 색을 떠올린다. 이 욕망은 단순한 모성 본능이 아니다. 훨씬 더 깊고 더러운 곳에서 온다. 너는 네가 아닌 누군가를 만들어내고 싶어 한다. 너를 대신해 살아줄 누군가. 네가 실패한 인생을 다시 시작할 기회를 줄 누군가. 아기는 그저 네가 되고 싶었던 너의 또 다른 버전이다.
오늘도 나는 테스트기에 오줌을 떨어뜨렸다. 이번엔 두 줄이 떠올랐다. 처음이다. 그러나 나는 기쁘지 않았다. 아직도 피임약을 먹고 있었고, 그는 여전히 콘돔을 썼다. 나는 화장실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눈물이 맺히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아기를 원했던 게 아니라, 그저 임신하고 싶은 나의 몸이 미쳤을 뿐이라는 걸.
침대에 누우면 눈이 타오르는 이유는 뭘까. 너는 정말 아기를 원하는 건가, 아니면 그저 네 몸이 미쳐버리는 광경을 목격하고 싶은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