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수님.”
그가 그녀를 부르는 말이 아직도 귀에 꿀렁거린다. 그날도 비가 왔다. 지하 주차장, 머플러가 짓누르는 향기 속에서 그녀는 나를—아니, 우리 가족 전체를—떠났다. 형의 손을 잡고.
먹물처럼 번진 그날의 향기
도장 찍은 이혼장 끝자락에 아직 피가 말라 있었다. 내가 흘린 건 아니야. 눈앞에서 형과 키스하는 그녀를 지켜보며, 코끝을 찌르는 붉은 철쭉 향은 사실 내가 긁어낸 마음의 살점 냄새였다.
왜 하필 형이었을까. 세상 모든 남자 중 왜 하필 내 피를 나눈 자였을까.
그날 이후로 매일 밤, 지하 주차장 콘크리트 냄새와 그녀의 샴푸 향이 섞인 공기가 되살아났다. 차단은 했지만, 5년째 버티지 못하고 그녀의 SNS를 뒤졌다. 아이 한 명이 있었고, 형이 아빠라고 했다. 피 냄새, 다시.
술자리 귓속말
동네 선술집 뒷방, 형님 취향으로 뒹굴던 다다미 위에서 친구가 술잔을 내려놓더니 속삭였다.
“야, 너 형수 얘기 들었냐?”
술이 덜 깬 눈이 흐릿하게 흔들렸다. 내가 모를 리 없잖냐고. 손에 든 소주잔이 조용히 떨렸다.
“재현이 형 집에 놀러 갔다가… 부엌에서 서진이 고기 뒤집는 거 보고 미쳤나 봐. 뜨거운 팬 냄새, 그리고 재현 숨결이 뒤섞였대. 한두 번도 아니래. 도현이 출장 떠날 때마다 냉장고 옆 바닥에서 몸 섞었대.”
친구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또 말했다.
“서진이가 재현 품에 안기며 그래. 형은 네가 아니야, 넌 항상 형의 그림자였지. 그 한마디에 재현 스스로 다시는 그 집에 발 못 붙였대. 근데 3년 뒤, 서진이 이혼 소식 전한 날 밤, 재현이 또 그 집 현관에 섰대. 문 앞에 아이 용품이 놓여 있었대. 피 냄새 대신 우유 냄새 맡으며 문 두드렸다나 봐.”
또 한 잔 더 따르며 누군가가 덧붙였다.
“유리라는 애도 있었지. 시아버지랑…”
술집 할머니가 창 밖 비를 보며 혼잣말처럼 이야기를 이었다.
“남편 결근한 오후였나 봐. 시아버지가 아들이 살해당한 꿈 꾸었다며 손 떨고 있었대. 유리가 시아버지 손등 어루만지다가… 입 맞췄대. 아들 대신 나를 삼켜도 돼요. 그날 이후 시아버지는 아들과 멀어졌고, 유리는 혼자 아이 낳았지. 아이 눈색이 시아버지 닮았다는 건 유리만 알고 있대.”
왜 우리는 금기의 불꽃에 손을 뻗는가
형과의 경쟁은 태내에서 시작됐다. 같은 자궁, 같은 양수, 같은 산소를 나눠 쓰던 두 남자. 누가 먼저 나올지, 누가 더 많이 움켜쥘지를 다투던 그 경쟁의 연장선이 바로 그녀였다.
누가 더 강한지를 증명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 형의 여자를 차지하는 것.
가장 어두운 욕망은 집착이라는 이름의 피 묻은 수건이다. 그녀를 떠나보낸 순간, 내 심장은 아직도 그날의 상처를 뜯어내고 있다. 피 냄새는 곧 상처가 숨쉬는 증거. 5년이라는 세월은 상처를 아물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굳어서 딱딱하게 돌아버렸다.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 향기
지하 주차장의 차가운 콘크리트, 누군가의 머플러, 피 묻은 수건처럼 곪아버린 상처. 아직도 그 냄새는 심장을 할퀸다.
혼자 남겨진 방, 빈 침대. 창문 사이로 스며드는 새벽 냄새. 그 가운데 누구의 향기를 먼저 찾을까. 그리고 그걸 찾는 순간, 또 누구를 배신하게 될까.
비가 그친 뒤 창밖으로 흙내음이 올라온다. 그 흙속에는 아직도 다 마르지 않은 피 냄새가 잠겨 있을지도 모른다. 5년 전 그날의 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