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흘리는 대가로 뜨거움을 얻고 싶다
"미안해, 내가 또..."
그 문자는 아침 여섯 시에 도착했다. 잠에서 덜 깬 눈으로 화면을 읽고 있자니, 숨이 턱 막혔다. ‘또’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눈에 박혔다. 또, 또, 또. 되풀이되는 이 한 음절이 왜 이토록 날카로울까.
나는 침대 끝에 앉아 문자를 셋, 넷, 다섯 번 읽었다. 문장이 짧을수록 파고드는 각도가 날카롭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기억이 안 난다. 그냥 밤새 불안한 꿈을 꾸다가 일어난 것뿐인데, 이미 미안함을 마셔야 하는 시간이었다. 손가락 끝으로 화면을 가늘게 긁었다. 유리가 금이 갈 듯한 소리가 났다. 상처라도 나면 속이 후련할까. 아니면 그만큼만 아프면 그가 조금 더 나를 안아줄까.
나는 유리다. 평범한 회사원. 교대근무 끝나고 술 한 잔 마시고 집에 오는, 그런 여자. 그를 처음 만난 건 클럽이었다. 시끄러운 음악 속에서 그가 내게 말했다.
“너 왜 이렇게 표정 없어?”
아무 이유 없이 던진 말이었다. 그런데 그 한마디가 머릿속에 남았다. 무표정이 누군가의 관심을 끌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으니까. 몇 주 뒤 그는 내 집에 놀러 왔다. 나는 그날따라 옛날 남자 얘기를 꺼냈다. 별다른 의도는 없었다. 그냥 그의 반응이 궁금해서. 잔뜩 기대하면서.
그는 유리잔을 바닥에 던졌다. 투명한 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유리 파편이 발가락 스치는 게 느껴졌다. 나는 깜짝 놀랐지만, 동시에 머릿속 한편에선 아, 이제야 하는 안도감이 솟았다. 미안하다고 하며 그가 내 손을 잡았다. 뜨거운 손끝이었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그렇게 만났다. 그는 화를 내면 옷장을 뒤집었다. 나는 그 뒤를 치웠다. 유리 조각을 줍고, 찢어진 옷을 꿰매고, 깨진 접시를 쓰레기봉투에 넣었다. 손이 베이면 피가 났다. 피가 나면 그가 더 세게 안아줬다. 차라리 이렇게라도 감정이 있는 거지. 무표정한 관계보다는 이게 낫다고 나는 스스로를 설득했다.
“사랑받는다는 건 상처받을 수 있는 상태가 된다는 걸 의미한다.”
— 정신분석학자 베르나드 브랑쇼
어릴 때 엄마는 나를 혼내면서도 말했다. “엄마가 너를 사랑해서 그러는 거야.” 그래서 꾸중 뒤에 스며든 미안함이 더 달콤하게 느껴졌다. 사랑은 따뜻한 게 아니라 뼈를 때리는 거라 배웠다. 지금도 잊지 못한다. 손바닥에 선명한 붉은 자국이 남을 때마다, 비로소 그 자리에 존재감이 새겨지는 기분이다.
그날도 그가 와서는 냉장고 문을 쾅 닫았다. 유리병 하나가 깨졌다. 과일 주스가 타일 사이로 스며들었다. 나는 천천히 걸레를 들었다. 발밑에 낀 유리 조각이 삐걱거렸다.
“괜찮아?”
그가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손등에 붙은 상처를 내밀었다. 붉은 점 하나가 터져 있었다. 그가 입을 맞췄다. 뜨거운 혀끝이 피 맛을 핥았다. 나는 그때마다 생각했다. 이게 사랑이라면, 나는 이미 오래전에 중독된 거야.
차가운 평화, 뜨거운 상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나는 주저 없이 뒤를 택할 것이다. 건강한 연애는 흔들림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그 안에서 자신을 증명할 방도를 찾지 못한다. 차라리 지독한 감정이 있어야 비로소 존재한다는 걸 느낀다. 피를 흘리는 대가로 뜨거움을 얻겠다는 도박. “나는 너를 위해 이만큼이나 아팠어”라는 무기를 만들기 위한 셈법.
오늘도 그 문자가 왔다. ‘미안해, 내가 또...’
나는 대답을 썼다.
“괜찮아, 나도 잘못했어.”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조금씩 갉아먹으며 사랑한다고 말한다. 건강한 연애란 무엇인가. 아픔이 없는 관계? 그건 관계가 아니라 그냥 공존 아닌가. 나는 여전히 상처받고 싶다. 아니, 내 피 위에서 너를 확인하고 싶다. 당신도 그런가? 차라리 눈물 나는 대가로라도 뜨거운 말 한마디를 듣고 싶은가? 아니면 정말로 조용한 평화를 원하는가?
미안해, 난 아직 모른다. 평생 이 질문에 떨며 살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