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침대 끝, 숨소리 도청

결혼 7년 차, 남편의 사랑이 식은 뒤에도 그녀는 침대 끝에서 숨소리를 따라가며 어둠 속 몸을 더듬는다. 붉은 립스틱으로 남긴 흔적, 숨소리의 무게, 그리고 지워지지 않는 욕망의 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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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끝, 숨소리 도청

밤 열두 시 반, 침대 끝에 앉아 있다. 손은 차가운 매트리스 위를 미끄러지듯 남편의 다리를 찾는다. 어둠 속에서도 분간되는 숨소리, 콧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미세한 떨림이 내 손바닥에 닿는다. 차라리 울음이라도 섞였으면 좋겠다. 그래야 이 숨소리가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게 아니라는 걸 믿을 수 있을 테니까.


쉿.

이건 도청이다. 아내가 남편의 숨소리에 귀를 대고, 바람의 흔적을 캐는 범죄다.


붉은 립스틱, 입술을 벌리고

서랍 안쪽에 꽁꽁 숨겨둔 립스틱을 꺼낸다. 크림 드 노와르, 번쩍이는 진홍색. 내 입술을 벌려 바른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니 향은 코끝을 찌르는 달콤한 유리알. 이 색을 남편의 목덜미에 묻히면 어떤 흔적이 남을까. 두 시간 전, 혹은 세 시간 전, 누군가 입맞춤으로 이 색을 지웠을지도 모른다.

거울 속 내 입술이 떨린다. 붉은색은 뱀처럼 휘어져 남편의 목선을 그린다. 딸깍, 립스틱 뚜껑을 닫는 소리가 방 안에 메아리친다. 흔적은 지우면 지울수록 선명해지는 병이다.


숨소리의 무게

유진은 아직 안 왔다. 나는 침대 끝, 문 쪽을 향해 고개를 숙인 채 그의 발걸음을 기다린다. 열쇠가 문고리를 두드리는 소리, 신발을 벗어 던지는 소리, 락스 냄새가 섞인 술 냄새가 먼저 배어난다. 그다음—숨소리.

오늘은 가볍다. 한 모금 끌어들이는 공기가 훨씬 짧다. 숨이 올라올 때마다 누군가의 손끝이 떠오른다. 내가 아닌, 누군가의 손끝이.

“오늘… 회식이 길었네.”

침대 옆 조명을 껐다. 어둠 속 유진의 가슴이 오르내린다. 손가락으로 옷깃을 툭툭 두드리며 먼지를 털어낸다. 먼지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머리카락처럼 느껴져서 손끝이 저려온다.


“누구랑 있었어?”

나는 물었다. 소리 없이.

유진은 대답했다. 숨소리로.

숨이 짧아.


그림자의 일기

유진이 뒤척일 때마다 벽에 드리운 그림자가 변한다. 어깨 너비, 팔의 길이, 손가락 사이 틈새까지. 나는 그림자를 따라 손을 뻗는다. 그림자는 차가운데, 유진의 몸은 뜨겁다. 뜨거운 까닭은 누군가의 체온 때문일 테다.

침대 시트에 남은 붉은 입술 자국—나도 모르게 내 입술로 비교한다. 큰가, 작은가. 흔들린가, 떨린가. 유진이 잠든 뒤, 나는 조심스레 시트 끝을 접어 봉투에 넣는다. 증거는 아니라 증명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촉감, 향기, 숨소리

새벽 세 시, 유진이 몸을 돌렸다. 내 손이 그의 뺨에 닿는다. 피부는 건조하다. 로션 냄새는 없다. 향수는 없다. 대신 담배 연기와 맥주 알코올이 뒤섞인 냄새가 코를 찌른다. 그 냄새 속에 달콤한 여자 향이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 눈을 감고 숨을 들이키면, 그 향이 코끝을 간질인다.

“미안.” 유진이 꿈속에서 중얼거린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꿈속의 대답은 꿈속으로.


범죄의 순간

새벽 네 시, 나는 다시 립스틱을 꺼낸다. 이번엔 유진의 목덜미에 살포시 찍어본다. 붉은색이 퍼진다. 유진이 깨지 않는다. 나는 한 손으로 숨소리를 막으며, 다른 손으로 유진의 목덜미를 따라 흔적을 더듬는다. 누군가가 있었다는 흔적. 나는 그 흔적을 따라가며 그의 숨소리를 도청한다. 숨이 끊길 듯 숨이 길어지는 순간, 나는 눈을 감는다.


사랑은 사라졌는데, 사랑의 흔적은 지워지지 않았다.

붉은색은 사라졌는데, 붉은 흔적은 지워지지 않았다.


끝을 말하지 못하는 이유

나는 유진의 뒷모습을 지켜본다. 아침이 되면 유진은 다시 나가고, 나는 다시 침대 끝에 앉아 숨소리를 따라간다. 우리는 서로를 지켜보는 것처럼, 서로를 피하는 것처럼, 서로를 사랑하는 것처럼 살아간다.


지금 이 순간, 너는 누군가의 숨소리를 듣고 있지 않은가. 그 숨소리가 너의 이름을 부르는지, 아니면 다른 이의 이름을 부르는지 확인하기 위해. 너는 왜 아직 눈을 감지 못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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