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새벽 2시. 냉장고 압축기만 둔탁하게 울린다. 침대 위에선 숨소리가 끊겼다 살아난다.
“여보, 딸내미… 나 아직 좋아하니?”
수진이 먼저 입을 뗐다. 민혁은 대꾸 대신 이불 속으로 손을 밀었다. 손끝이 닿은 건 잠옷 단추 풀린 틈새 살결. 왁싱한 지 하루 지난 종아리를 지나 엉덩이 곡선을 더듬어 허리를 휘감았다. 손바닥이 살 위에 닿는 순간, 수진의 몸이 떨렸다.
샤워 후 남은 아로마 향이 아니라 사과 체취였다. 딸내미. 결혼식 날부터 써온 애칭. 이제는 두 아들 엄마 된 몸에 붙는 서글픈 낯선 이름.
민혁의 숨결이 귀에 닿는 순간, 수진은 18살로 돌아갔다. 고등학교 교실 뒷문 근처에서 처음 키스했을 때 민혁이 지금 눈앞에 있다. 애칭은 시간을 뒤튼다. 결혼 15년차 늘어진 살림살이가 첫사랑의 떨림으로 되돌아간다. 그 순간만큼은 현재의 남편이 아니라, ‘그 애’다.
부부의 침대 위에서 애칭은 교묘한 실타래다. 민혁은 수진을 ‘딸내미’라 부르며 자신의 18살을 소환한다. 수진은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민혁의 18살을 기억한다. 두 사람은 동시에 서로의 과거를 간음한다. 금기가 여기서 시작된다. 이혼 서류 들고 변호사 사무실로 향할 부부가, 아들 둘 둔 가장과 가정주부가, 서로의 첫사랑을 침대 위로 소환하는 것. 마치 죽은 연인의 이름을 불러보는 것처럼 부정하다.
미주의 ‘오빠’는 살아 있다
“오빠, 거기…”
미주는 아직도 남편을 오빠라 부른다. 40대 중반, 딸은 대학 2학년. 하지만 침대 위에선 남편을 20대 남학생으로 환각한다. 작년 가을 남편이 실수로 딸 전화번호로 문자를 보냈다.
아직도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처럼 예쁘구나 지금 만나러 갈게, 오빠가
딸은 깜짝 놀랐겠지. 하지만 미주는 남편이 보낸 줄 알았다. 그날 밤 미주는 남편에게 “오빠”라 불렀다. 남편은 당황했지만 받았다. 그들은 오늘밖엔 딸의 존재를 잊었다.
다음 날 아침, 미주는 냉정하게 말했다.
“오늘 오후 2시 변호사 사무실이야. 우리 이혼 서류 마무리하는 날이잖아.”
영희의 ‘선생님’은 없다
영희는 남편을 ‘선생님’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남편은 고등학교 체육 선생님이었다. 졸업 후 10년 만에 우연히 재회해 결혼 5년 차. 침대 위에서 ‘선생님’은 다른 냄새를 냈다.
선생님, 여기 보여주세요
남편은 처음엔 불편해했다. 하지만 영희의 눈빛을 보고 알았다. 그녀는 지금 교실 뒤편에서 수업 듣던 17살 소녀다. 남편은 그 소녀를 불안하게 원했다.
지난달 영희는 학교 앞에서 우연히 남편의 제자를 만났다. 제자는 여전히 ‘선생님’이라 부르며 인사했다. 순간 영희의 몸이 굳었다. 그날 밤 남편에게 말했다.
“이제 그만 불러. 우리 아들도 자라면 부끄러울 거야.”
민혁이 수진의 귓속에 속삭였다.
“딸내미, 오늘도 너만 18살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