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너의 눈빛이 나를 마녀로 만들던 순간

이별의 이유를 말하는 순간, 나는 너무 뜨거운 욕망의 마녀로 낙인됐다. 현대 사회가 ‘적당한’ 사랑만 허락하는 잔혹한 방식을 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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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나를 불태운 그 말

"그냥... 느낌이 없어졌대."

김준혁이 말한 순간, 테이블 위에 놓인 내 손가락들이 초록색으로 변하는 것만 같았다.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홍대 카페, 그 오후의 햇살이 유리창을 통과해 우리 사이에 떨어졌다. 그 빛마저 차가웠다.

그가 말한 '느낌'이란 건, 내가 아니라 '우리'여야 했는데.

그 순간부터 나는 뭔가를 부수고 싶었다. 그의 폰, 그의 얼굴, 아니면 우리가 함께 찍었던 사진들이라도. 하지만 그건 너무 직접적이었다. 대신 나는 다른 방법을 택했다.

욕망의 흔적을 지우는 법

이별 이유를 입 밖에 낸 그날 밤, 나는 인스타그램 속 우리 사진들에 필터를 하나씩 입혔다. 원래 분위기 있던 건 다 날려버리고, 색을 빼고, 대비를 극단으로 올렸다. 마치 흑백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내가 하는 건 단순한 사진 편집이 아니었다. 그는 나의 욕망을 '부담스럽다'고 했고, 나는 그 욕망의 흔적을 지우는 중이었다. 마녀처럼.


유진이의 이야기

"나한테 왜 이렇게 집착하냐고? 그게 뭔데..."

유진은 그 말을 들은 순간, 손에 들고 있던 커피잔을 바닥에 던져버렸다. 사실은 떨어뜨린 것일 수도 있지만, 그녀는 일부러 그렇게 했다고 기억하기로 했다.

같은 회사의 박민수. 썸이었던가, 연애였던가. 어쨌든 그가 떠난 이유를 말했을 때, 유진은 자신의 감정을 '집착'이라는 단어로 낙인찍는 순간을 목격했다.

욕망은 언제나 집착이 되는 걸까? 아니면 이제껏 내가 느낀 건 다 집착이었을까?

그날 이후 유진은 회사에서 미친년으로 통했다. 민수의 카톡을 미친 듯이 확인하고, 그의 일정을 추적하고, 그가 새로 만난 여자를 찾아다녔다.

"진짜 미쳤네." 동료들이 속삭였다.

하지만 유진은 알았다. 자신이 미친 게 아니라, 그냥 사랑했던 거라는 걸. 그리고 사랑하는 건, 이 사회에서는 미친 짓이라는 걸.

현대판 마녀의 조건

우리는 왜 이별의 이유를 말하는 순간, 상대를 '마녀'로 만드는가?

심리학자들은 이를 '욕망의 부정(negation of desire)'이라고 부른다. 내가 너를 원하지 않는다고 선언하는 순간, 너의 욕망은 금기가 된다. 그리고 금기를 어기는 자는 처벌받아야 한다.

중세 시대의 마녀처럼. 2024년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마녀는 존재한다. 그들은 단지 너무 많이 원했을 뿐이다.

너무 많이 원해서 당황스러웠고, 너무 많이 원해서 무서웠고, 너무 많이 원해서 부담스러웠다.


나를 불태운 이유

한 달 후, 나는 우연히 준혁을 다시 만났다. 그는 새로운 여자와 함께였다. 그녀는 나와는 완전히 다른 타입이었다. 조용하고, 은은하고, 내가 결코 될 수 없는 그런 사람.

그때 깨달았다. 나를 마녀로 만든 건 단순한 이별이 아니었다. 나의 욕망이 너무 거칠었고, 너무 들끓었고, 너무 뜨거웠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는 '적당한' 욕망만을 용인한다. 적당히 좋아하고, 적당히 아프고, 적당히 잊어버리는.

하지만 우리는 적당히 사랑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마녀가 되었다.

당신은 언제 마녀가 되었나

당신도 누군가에게 "이러지 마"라는 말을 들었던가? 당신도 욕망의 크기 때문에 혼란스러워했던가? 당신도 사랑이 집착으로 낙인찍히는 순간을 목격했던가?

그렇다면 당신은 이미 마녀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눈빛이 당신을 불태운 순간부터.

그리고 아직도 우리는 사랑한다.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그 뜨거운 금지된 감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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