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그녀의 불임을 알고도 침대에 뛰어들었지만, 나는 결국 발길을 돌렸다

불임 흉터 위에서 맹세했던 남편이, 생식 욕망에 굴복해 짐을 싸는 순간까지 은밀하게 부식된 17금 서사. DNA가 요구하는 미래 앞에서 사랑이 무너지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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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불임을 알고도 침대에 뛰어들었지만, 나는 결국 발길을 돌렸다

수진의 배 위에 엎드린 채 내가 처음으로 눈을 떴을 때, 그곳엔 이미 얼룩이 있었다. 흰색 팬티 사이로 희미하게 드러난 수술 흉터. 아래쪽으로 쭉 내려가는 6cm, 그 짧은 자국이 그녀를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으로 낙인찍었다는 사실을 나는 머리보다 살갗이 먼저 기억했다. 그날 밤 나는 그 흉터를 혀로 쓸며 말했다.

"여기, 내가 숨겨줄게. 아무도 못 보게."

그녀는 눈을 감았다. 나는 거짓말을 했다. 사실 나는 그 흉터를 하나의 장애물로 기억했다. 누군가의 탯줄이 끊어진 곳에 새 탯줄을 이을 수 없다는, 신이 써 놓은 반칙.


사내 회식에서 돌아온 날, 나는 현관문을 열자마자 수진의 냄새를 맡았다. 착한 냄새. 무기력하게 씻긴 샴푸 향과 젖은 수건 냄새. 그녀는 소파에 앉아 있었고, 나는 그녀의 무릎 사이로 얼굴을 묻었다. 그러나 고개를 들었을 때, 나는 거기서 아이 냄새를 찾았다. 찾았다기보다, 찾지 못한 허공이 뱃속에서 뻗어 올랐다.

"오늘, 유치원 행사 다녀왔대. 동호 대리가 아들 데리고 왔더라고."

나는 대답 없이 그녀의 체온을 더 깊이 빨아들였다. 그러나 뜨거운 열은 이미 식어가고 있었다. 나는 아이를 원한다는 사실을, 그녀의 체온보다 먼저 느꼈다.


회사 점심시간, 나는 7층 계단참에서 동호 대리를 마주쳤다. 그는 아들 사진을 자랑스럽게 휴대폰에 띄웠다. 초록색 원피스 입은 여섯 살 아이가 카메라를 향해 손가락 V를 그리고 있었다.

"우리 아들, 유치원 마지막 운동회였어요. 형도 얼른..."

나는 피식 웃었다.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이 눈 앞에서 활짝 웃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수진의 흉터를 떠올렸다. 그 짧은 선이 내 DNA를 끊어낼 것이라는 사실이, 눈앞의 아이 사진보다 더 또렷했다.

그날 저녁, 나는 수진의 몸 위에서 눈을 감았다. 그녀는 내가 누군가의 아내 위에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불가능 위에 떠오르는 것이라는 걸 아직 몰랐다. 나는 그녀의 복부에 손바닥을 대고, 그곳에 아무것도 자라지 않을 것임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 공허함을, 오히려 거칠게 탐했다.


한 달 후, 나는 인사과장에게 일본 파견을 요청했다. 거짓말을 했다. 아내 건강 문제로 해외 치료를 병행하려 한다고. 실제로는 그녀를 떠나려는 유전자의 명령을 따라갔다. 서류를 꺼내는 순간, 나는 이미 배신자였다.

수진은 나의 짐을 보며 물었다.

"나는?" "...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그녀는 이해했다. ‘있고’는 없음을 의미하는 관용 표현이라는 걸. 우리는 서로의 약점을 정확히 꿰뚫었다. 그녀는 내가 그녀를 하나의 결함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나는 그녀가 나를 하나의 기회로 여기고 있음을.


비행기 안, 나는 창밖으로 서울의 불빛을 내려다봤다. 그 사이로 아파트 단지의 불빛들이 반짝였다. 한 칸 한 칸마다, 누군가의 울음소리, 웃음소리, 생명의 소음이 스며들었다. 나는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사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나는 수진의 몸 위에서만이 아니라, 수진의 몸의 한계 위에서 사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한계는 나에게 자식을 낳지 못할 미래를 선물했다.


이륙 직전, 나는 휴대폰을 꺼냈다. 수진에게 보낼 마지막 메시지를 썼다.

"나는 아이를 원해. 너 없이."

보내지 않았다. 대신 나는 그녀의 흉터를 떠올렸다. 그 짧은 선이 나의 DNA를 끊어낼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그녀의 몸을 하나의 얼룩으로 여겼던 순간을, 하나의 운명으로 바꾸려 했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릴 때, 나는 문득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몸이 나와 다른 미래를 그릴 수 없다는 이유로 떠나는 순간, 나는 과연 괴물이 되는가. 아니면 애초에 인간은 그런 괴물이었던 것인가.

결국 나는 유전자의 명령에 따라 발길을 돌렸다. 수진의 불임을 알고도 침대에 뛰어들었던 그날 밤, 나는 이미 그녀의 몸에 새긴 얼룩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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