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이, 차도 떼려고 해"
셔츠 단추를 풀어헤치며, 준혁이 말했다. 한 달째 늦어진 카드값, 그리고 아파트 담보대출 연체. 한마디로 몸값이었다.
그날 밤 침대 위, 나는 처음으로 발끝이 닿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준혁의 무릎이 나의 종아리를 톡톡 건드렸을 시간. 대신 차가운 시트가 네 개의 팔다리를 삼켰다.
돈이 떠날 때는 사랑도 함께 떠나는 걸까.
욕망의 반전
사실 나는 안도했다. 25평 아파트에 5억대 대출이라니, 가슴이 터질 것처럼 두근거리던 날들이 싫었다. 하지만 그 ‘안도’를 마주치는 순간, 또 다른 공포가 싹텄다.
혹시 나는 파산을 기다렸던 거야?
준혁이 돈이 있을 때, 나는 그의 지갑 두께 만큼이나 작아졌었다. 명품 백 한 개 선물하면 할 말을 잃고, 해외여행을 떠나자고 하면 몸이 먼저 움직였다. 어쩌면 그는 내가 아닌 ‘그가 쥐고 있는 나’를 사랑했고, 나도 그를 사랑한 척했을 뿐.
영희의 살인적 정숙
영희는 남편이 사채까지 끌어다 쓴 걸 알았을 때, 침대 옆 벽면을 뜯어내려 했다. "숨 쉬는 소리도 요금이 나올까 봐 무서워"라고 그녀는 속삭였다. 실제로 남편이 거실에서 숨조차 크게 쉬지 못했다. 액정처럼 쪼개진 침대 위, 그녀는 한쪽 끝에 몸을 접고 남편이 오지 못하도록 다리를 뻗었다.
밤마다 영희는 혼자 몰래 잠금장치를 풀었다. 희망이라도 남았는지, 아니면 두려움 때문인지. 그런데도 남편은 건드리지 못했다. 서로를 마주치면, 부도수표처럼 무가치가 되어버릴까 두려웠던 거다.
지수의 새벽 2시 기도
지수는 남편이 폭탄을 터뜨린 후, 침실 문을 닫고 불이 꺼진 거실에서 테이블 아래에 몸을 숨겼다. 새벽 2시, 그녀는 남편이 앉았던 소파에 다리를 올리고 화면 속 남주혁을 한 시간 넘게 바라봤다. 돈은 없지만 가상의 연애엔 빚이 없잖아.
그래도 난 네가 아닌, 네가 아닌 누군가를 원한다.
거기서 지수는 깨달았다. 파탄난 건 결혼이 아니라, 용서 매매 시장이었다. 지금껏 그녀는 용서라는 상품을 돈과 맞바꿔 왔다. 이젠 재고가 떨어졌다.
왜 우리는 파산한 사랑에 끌리는가
신용불량자가 되면 전화번호도 바꿔야 한다. 그렇게 사회와 단절되는 순간, 부부는 서로를 향한 마지막 채권자가 된다. ‘당신이 나를 망쳤어’라는 소송은 침대 위에서만 제기되고, 그날 밤 승소도 패소도 아무도 없다.
연인이 부자였다가 거지가 되면, 우리는 처음부터 그를 사랑했는지를 증명해야 한다. 그 잔혹한 시험대가 바로 커져버린 침대다. 몸이 닿지 않는 공간만큼이나, 마음도 닿지 않는다.
당신의 침대는 지금 얼마나 넓은가
오늘 밤, 한 침대를 차지하는 두 사람 사이. 당신이 먼저 팔을 뻗어 상대를 찾는다면, 그건 사랑인가, 아니면 빚을 갚으려는 두려움인가.
그리고 만약 상대가 그 팔을 피한다면, 당신은 그 손목을 놓아줄 수 있을까.
당신은 사실 언제부터 그 손을 잡고 싶지 않았는지, 지금 깨닫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