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2시 14분. 집에 돌아온 지 17분째였다. 나는 아직도 ‘지금 읽음’ 표시가 뜨지 않는 채팅방을 훑었다. 마지막 메시지는 내가 보냈던 “오늘은 너무 즐거웠어. 너랑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몰라”였다. 아래로 올리면 올릴수록 대화는 점점 더 아찔하게 달콤해졌다. 그러다 다시 스크롤을 내리면 시꺼멓게 끊기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곳에 그가 있었고, 지금은 없다.
문득 사라진 온도
그는 내가 아니었을까. 내가 손에 쥔 화면 속에 갇힌 망령이었던 건 아닐까.
네이버 지도는 아직도 ‘헤어진 장소’라는 흔적을 띄운다. 8월 22일 오후 9시 37분, 을지로 3가 맥주집. 그날 나는 마지막으로 그의 눈동자에 비친 내 모습을 본 것 같다. 그리고 3일 뒤, 그는 단답으로 ‘요즘 바빠서 연락 늦어’ 한 줄 남기고 싹 사라졌다.
‘읽씹’도 아니었다. 그냥 아무 것도 아니었다.
몸에 배어버린 기러기알
나는 그의 프로필 사진을 확대했다 축소했다를 이틀째 반복한다. 0.3초짜리 터치 하나만으로도 ‘온라인’ 표시가 떠야 정상 아닌가. 허나 48시간째 그 초록 불빛은 꺼져 있다. 내 손가락끝은 저절로 그의 인스타그램을 뒤진다. 스토리는 물론, 팔로우 목록, 심지어 ‘좋아요’ 누른 게시물 372개까지. 그 사이 새로 생긴 팔로잉 3명은 누굴까. 분명 여자일 테고, 어쩌면 나를 대신할 사람일 테고.
순간 모든 피가 발가락으로 빠지는 듯한 전율이 손끝을 타고 올라온다. 나는 추적꾼이 되고 있나. 그건 알지만 멈출 수 없다.
현실, 혹은 꿈에서 본 이야기
(1) 시은이의 32일
시은은 ‘범용’이라는 닉네임을 만난 지 32일 만에 처음으로 술을 마신다. 그녀는 ‘범용’이 자기 집 근처 라멘집 앞에서 키를 만지작거렸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때마다 새삼 다시 피가 말랐다. 32일 동안 매일 아침 ‘좋은 아침’을 보낸 남자였다. 마지막으로 보낸 메시지는 “사진 보내줘, 너 얼굴이 보고 싶어”였는데, 그 다음날부터 읽지도 않고 답도 없었다.
시은은 업무 중에도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5분마다 확인, 10분마다 재시작. 점심시간에는 변기에 앉아 통화버튼을 눌렀다 끊었다를 17번 반복했다. 딴지 걸리면 사랑한다고 말할까? 아니면 그냥 괜찮냐고 물을까? 결국 그녀는 ‘보이스톡 1초’를 보내고 말았다.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2) 준호가 품은 검은 잉크
준호는 ‘혜진’과 1박 2일로 제주를 다녀왔다. 첫날 밤, 둘은 숙소 침대에 누워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 없이 웃었다. 준호는 그 미소를 평생 기억할 줄 알았다. 그리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 혜진의 카톡 마지막 메시지는 “우리 천천히 만나자”였다. 이후 47일째 아무 소식 없다.
준호는 제주에서 찍은 사진들을 매일 밤 지웠다 다시 복원했다. 혹시 내가 찍은 사진이 그녀에게 불편했을까. 그는 혜진의 하루를 상상했다. 아침 7시 30분 기상,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퇴근 후 요가. 혹시 그녀가 요가원에서 누군가를 만났을까. 내가 더 잘해줬어야 했나. 준호는 인터넷에서 ‘카톡 차단 확인법’을 검색했다. 두 시간 뒤, 그는 혜진이 자신을 차단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왜 우리는 이 앱 속 저주를 원하는가
사실은 단 한 번도 우리는 상대를 원한 게 아니었다. 우리는 들리지 않는 ‘종료음’을 원했다.
‘매칭’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자꾸만 ‘완성’의 환상을 심는다. 스와이프 한 번에 누군가를 고르고, 연락 한 번에 관계를 시작한다는 착각. 그러나 앱은 우리에게 끝도 한 번에 끊기는 능력을 줬다. 그건 끝내주는 능력이다. 더 이상 얼굴 맞대고 말할 필요도, 눈물 흘릴 장소도, 헤어짐의 무게도 없다. ‘차단’ 한 방이면 끝. 그래서 우리는 끝조차도 눈치 채지 못하고 살아간다.
심리학자들은 이것을 ‘정서적 범죄 현장’이라 부른다. 희생자는 단 한 명, 가해자는 기껏해야 한 명이지만 그 흔적은 디지털 공간에 영구 저장된다. 실제로 우리는 ‘증거’를 포기할 수 없다. 혹시라도, 내가 아니었던 이유를 찾을 수도 있으니까.
남겨진 자의 피 말리는 질문
그가 사라진 지 37일째. 나는 여전히 휴대폰을 쥐고 있다. 알림이 울릴 때마다 가슴이 덜컹거린다. ‘혹시’라는 단어가 내 목끝에 붙은 가시처럼 괴로운데, 그래도 뽑을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너는 누군가의 프로필 사진을 확대했다 축소하고 있을까.
그리고 만약 오늘 밤, 우연히 그가 다시 ‘온라인’으로 돌아온다면 나는 무슨 말을 건넬까. 아니, 과연 나는 그 한 줄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니면 그 한 줄이 또 다른 48시간의 정적을 낳을까. 이제 나는 두려워한다. 앱 속에서 우리는 모두 한 번씩 죽었다 살아났다 하지만, 정작 ‘마지막’에는 누구도 살아남지 못한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