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침대에 넣는 거, 언제 마지막이었지?”
안나가 물었다. 퀼트 밑으로 손을 슬슬 밀어넣으며. 46세, 결혼 20년. 민수는 이미 잠든 척 귀를 떼고 있었다. 숨소리만 조심스레 뱉는다. 안나는 문득 손가락 끝에서 투명한 전기가 번쩍일 것만 같았다. 그래, 이 손이 아직 누군가를 태운다면, 그 누군가가 민수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잖아.
욕망이 식은 것일까, 아니면 숨은 것일까
두 사람은 이십 대 후반, 모텔 302호에서 처음 뒤틀렸다. 문고리가 부서질 만큼. 민수가 키를 꽂지 못해 문 앞에서 무릎 꿇은 채 안나의 치마를 걷어 올린 게 시작이었다. 지금 그 기억이 안나의 머릿속에선 빛바랜 포스터처럼 떨어져 나간다. 내가 누군가의 몸에 불이 되던 적이 있었나. 그런 자문이 심장을 긁는다.
결혼, 출산, 육아, 이직, 상실. 하나씩 지나며 침실은 전쟁터에서 병동으로 바뀌었다. 숨소리조차 내지 않는 공격은 없었다. 대신 무드등 하나 사라지고, 네온사인처럼 튀던 피부 냄새는 스킨템플 크림 냄새로 바뀌었다. 민수는 어느 순부턴 안나의 가슴을 볼 때도 ‘점심 도시락 봉지’나 떠올린다 했다. 안나는 웃으며 받았다. 그래, 나도 너의 뱃살이 새우튀김처럼 느껴지니까.
시은의 반지와 은밀한 프로필
안나 옆집 시은은 결혼 12년 차. 남편 민재는 출장이 잦아서 하루 이틀 집에 없는 날이 많다. 시은은 지난겨울 ‘클럽 에이블’이라는 앱을 다운로드했다. 프로필 사진은 팔꿈치만. 붉은 조명에 젖은 머리카락만 드러낸 채. 닉네임은 '9시 반 숏컷'. 타임라인엔 한 문장.
"참을 수 없이 느린 오후, 빠르게 끝내고 싶은 밤."
그녀는 한 달 만에 세 명을 만났다. 첫 번째는 28세 디자이너 준호. 시은은 역삼동 파티룸에서 조명 스위치를 끄고 준호에게 말했다.
“여기서 네가 먼저 밖으로 나가면 안 돼. 내가 먼저 가면 돼.”
준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시은은 반지를 꼈다. 결혼반지. 그래서 더 반짝였다. 이 반지가 빛날수록, 나는 더 화끈해. 두 번째는 35세 유부남 상우. 인천공항 근처 모텔. 시은은 오후 3시 체크인, 5시 체크아웃. 상우는 현관문에 서서 울었다.
“우리, 이제 그만하자.”
시은은 대답 대신 침대 시트를 한 장 찢어 상우의 눈가에 갖다 댔다. 시트는 파랗게 젖었다. 이건 눈물이 아니야. 잉크야. 시은은 그날 퇴근길에 시장에서 꽃게 4마리를 샀다. 민재는 집에 와서 국물을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오늘 국물이 왜 이렇게 짜?”
왜 우리는 타인의 눈을 끌어당기는가
결혼은 하나의 항구라는 착각이다. 실제로는 오래된 러시아 룰렛. 매일매일 방아쇠를 당기며 산다는 것. 그런데 어떤 날은 총알이 없어. 그래서 우리는 다른 총알이 있는 곳을 찾는다. 다른 사람의 침대, 다른 사람의 숨결이 우리를 살려줄 거라는 망상.
심리학자 카네먼은 말한다. ‘예측 불가능한 보상이 가장 강렬한 도파민을 해방한다’고. 20년 부부의 침실은 예측 가능해서 죽은 것이다. 9시 뉴스와 함께 시작되는 민수의 코고는 소리. 안나의 시계는 10시 12분. 그 순간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사실에 희열이 서린다. 나는 아직 누군가를 불태울 수 있을까.
마지막 질문
안나는 내일 아침 민수에게 물을 것이다. 이마에 키스하며, 세수하려는 뒷모습에 말없이 품안에 안긴 채.
“야, 너랑 나, 오늘 새벽 어디로 몰래 가볼래?”
그리고 민수가 눈을 뜨면, 안나는 말할 것이다.
“아니, 그냥 실수였어. 아침밥 먹자.”
그 순간, 침대는 다시 숯덩어리가 될까, 불꽃이 될까. 누가 알겠는가. 단지 네가 지금, 누군가의 침대 시트를 떠올리며 그래도 나는이라고 속삭이는 그 뜨거움이, 아직 식지 않았다는 것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