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20대 모든 날을 함께한 너, 난 단 한 번만 더 첫키스처럼 널 원한다

10년째인 연인에게도 여전히 첫 만남의 전율을 갈망하는 음습한 속마음. 손등에 남은 키스 한 방울, 그 잔상을 못 지워 지금도 되감는 이야기.

집착첫키스관성욕망

“우리, 처음 만났을 때 키스는 몇 번째 만남에 했지?”

나는 담배 연기를 내 입 안 가득 머금었다가 천천히 내보낸다. 지금도 너는 나의 입술 틈새로 스며들 듯 말듯 말을 걸지만, 먼 곳에 있는 것 같아.

숨긴 맛

네 손가락이 내 이마를 가볍게 쓸어 내릴 때마다 나는 그날을 떠올린다. 23살, 비 오는 홍대 뒷골목, 술이 덜 깬 새벽 2시.

네가 먼저 번호를 물었고 나는 종이에 적어 주지 않았어. 대신 내 손등에 펜으로 써줬지.
그때 네 입술이 손등을 스쳤잖아. 단 한 번. 이를 악문 채 집에 돌아가 비누로 지우지 못하고 샤워만 세 번 했던 날.

10년이 지났지만, 그때의 혀끝이 아직도 내 손등 위에서 살아 움직인다. 너는 모르지. 매일 밤 내가 몰래 그날을 되감아 보고 있다는 걸.


고장난 자동차처럼

10년은 길다. 충분히 모든 감정이 낡을 시간이다. 하지만 내 안의 어떤 스위치는 반대로 작동한다.

점점 더 처음을 갈망하는 버튼.

우리는 이제 손을 맞잡는 순서도, 누가 먼저 샤워할지도, 어떤 자세가 더 편한지도 알고 있다. 그것이 편안함인 줄 알았는데 이게 익숙함의 함정이었어. 익숙함은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는다.

너는 안심하는구나. 나는 그만큼 불안해.

밤마다 네 곁에 누워 있으면 나는 내가 아닌 것 같아. 33살의 나는 23살의 너에게 처음 선보이던 나의 잔상을 끊임없이 쫓는다. 그 잔상은 더 이상 여기 없지만, 내 몸은 아직도 그날의 온도를 기억한다.


미나의 이야기

미나는 29살, 대학원 동기와 7년째 사귄다. 둘 다 연애 초기엔 서로를 먹어 치우듯 바라봤다.

오후 3시, 미나는 도서관 지하 열람실에서 남자친구의 손등을 만지작거렸다. 도서관이니까 아무도 모르게 비밀스레. 
그때는 손등 하나만으로도 심장이 터질 것 같았어.

지금은? 미나는 지난주에 그에게 말했다. “우리, 한 달 만에 키스한 거 맞아?” 라고. 그는 잠깐 눈을 깜빡이더니 “그래? 바빴으니까” 하고 넘겼다.

미나는 나에게 속삭였다.

손등 한 번 만져도 전율이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아무 때나 입 맞춰도 아무 느낌이 안 나요.

나는 미나에게 물었다. 그 감정은 정말 사라진 걸까, 아니면 너무 익숙해져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걸까.


재혁의 이야기

재혁은 31살, 첫사랑과 11년째. 그는 최근 비밀 계정을 하나 만들었다.

계정 이름은 @첫키스되감기.
여기에 11년 전 첫 키스 현장을 매일 밤 50초짜리 영상으로 올린다. 
필터로 처음 느꼈던 하트박드 소리를 덧입혀서.

그는 홀로 이 영상을 보며 23살의 자신을 자극한다. 누가 보면 괴짜로 찍힐지도 모른다. 하지만 재혁은 아직도 그날의 심장 박동수 146회를 외운다.

한 번은 그녀가 우연히 이 계정을 발견했다.

“이거 우리야?”
재혁은 대답하지 못했다. 
“왜 아직도 이런 걸 해?”

왜냐고? 재혁은 속으로 대답했다. 왜냐하면 지금의 너와는 다른 너가 있었고, 지금의 나와는 다른 내가 있었으니까.


그리움의 화학

사실 우리가 갈망하는 건 ‘처음’이 아니라 ‘처음으로 돌아간 나’다.

심리학자들은 이걸 로맨틱 노스탤지아라고 부른다. 뇌는 첫 황홀의 화학물질을 저장해두고 계속 반복하려 한다. 그게 도파민, 옥시토신, 엔돌핀의 3색 향연. 하지만 남아있는 건 뇌 속의 스크랩북뿐, 현실의 너는 그때의 너가 아니다.

이건 금기를 향한 동시 도피다.

우리는 스스로도 모르게 ‘처음’이라는 금기를 건드리며 현재의 관계를 흔든다. 그래서 누군가는 새벽 3시에 옛 카톡을 쭉 뒤적이고, 누군가는 첫 데이트 코스를 다시 밟아본다.

하지만 다시 밟아도 그곳은 이미 지도 바깥.


너의 손등, 내 손등

이제 나는 말한다.

“그래도 좋아. 단 한 번만, 그날로 돌아가고 싶어.”

너는 피식 웃으며 말한다.

“왜?”

나는 대답할 수 없다. 다만, 네가 그날 나에게 건넨 손등 하나가 아직도 내 피부 위에 흔적처럼 남아 있다는 걸 어떻게 말하겠어.

그리고 숨겨 둔 마지막 질문.

지금 이 순간, 너 역시 내 손등에 새겨둔 그날의 흔적을 지우고 싶은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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