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초간의 무호흡, 식탁 위에 놓인 검은 화면
김현수는 젓가락을 든 손이 허공에 떠 있었다. 아침 햇살이 스며드는 식탁 위, 태블릿 하나가 잠긴 채 놓여 있었다. 검은 화면에 비친 건 그의 창백한 얼굴과, 그 뒤로 다가오는 지우의 실루엣이었다.
오늘 아침, 인스타그램 DM으로 걸린 링크 한 개.
‘당신 딸 맞나요?’ 라는 문장만 달려 있었다.
클릭하기 전까지는 그저 무심한 스팸쯤으로 여겼다. 그러나 파일이 열리는 순간, 현수의 폐는 알약처럼 굳어졌다. 화면 안에는 딸의 얼굴이 있었고, 그 아래로는 결코 본 적 없는 표정이 깔려 있었다. 입꼬리가 달아오른 듯한 미소, 고개를 반쯤 돌린 채 어딘가를 응시하는 눈빛—그것은 지우가 아니었다. 동시에 지우였다.
아버지의 눈, 아버지가 아닌 눈
현수는 태블릿을 뒤집었다. 화면은 꺼지지 않았다. 검은 유리에 비친 자신의 동공이 두 배로 떠오르더니, 그 안에서 딸의 얼굴이 미소 짓는 듯 보였다.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시선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걸 느꼈다.
이쪽은 아버지의 눈이다.
저쪽은 남자의 눈이다.
두 시선 사이에 놓인 것은 검은 실루엛 하나. 지난 25년간 그 실루엛은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굳어져 왔다. 그러나 지금, AI가 만든 그림자 한 장이 그 실루엣을 흔들었다. 현수는 문득 자신이 딸의 **‘그림자 하나’**조차 제대로 본 적 없다는 걸 깨달았다.
변기 뚜껑 위에 앉아, 52세 진혁의 밤
이진혁(가명, 52세)은 회사 화장실 변기 뚜껑을 덮고 앉아 있었다. 좁은 칸 안, 형광등이 시퍼런 눈꺼풀을 깜박였다. 그는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검은 화면 속, 딸의 얼굴이 낯선 달빛 아래서 웃고 있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화면을 흔들었다. 미소는 흔들리지 않았다.
‘누가 이런 걸…’
진혁은 수소문 끝에 찾아낸 20대 남자를 만났다. 약국 앞 편의점. 조명 아래, 청년의 눈동자에 형광등이 중첩되었다. 그 눈동자 속에도 역시 검은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진혁은 한 시간 동안 말을 잊다가 단 한 마디를 꺼냈다.
“너희도 딸 키우면 알 거야.”
청년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임은 ‘알겠다’가 아니라 **‘나도 모른다’**였다. 그 순간, 진혁은 자신이 그를 죽이지 못한 이유를 깨달았다. 청년의 눈에 비친 그림자가 어쩌면 미래의 자기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말할 수 없는 공모였다.
숨겨진 USB, 48세 성우의 이중잠금
박성우(가명, 48세)는 아내 몰래 딸의 AI 사진을 3장 더 내려받았다. 그리고 안방 서랍 맨 뒤, 검은 USB 한 개에 담아 컴퓨터 바탕화면에선 삭제했다. 그 USB는 이중잠금: 첫 번째는 컴퓨터 암호, 두 번째는 그의 뇌리 속 ‘이건 내 딸이 아니다’라는 주문이었다.
그러나 매번 혼자 볼 때마다, 그 주문은 반대로 읽혔다. *‘이건 내 딸이 아니라, AI일 뿐’*이라고 되뇌면서도, 눈길은 오히려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궁금증은 잠긴 문 너머에서 숨죽인 웃음소리처럼 들렸다.
검열자의 탄생, 아버지라는 이름
당신은 누구의 딸인가요?
금기는 언제나 아버지 안에서 시작된다. 아버지는 세계 최초의 검열자다. 딸아이가 태어나자마자, 그는 ‘이건 봐선 안 된다’는 국경을 그린다. 그 국경은 시간이 지날수록 굳어지고, 동시에 점점 더 투명해진다. AI는 바로 그 투명한 국경을 거울처럼 비춘다.
거울은 결코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다.
거울은 단지 네 얼굴을 되돌려줄 뿐이다.
현대의 아버지들은 이중의 전쟁을 치른다. 하나는 그들이 보는 딸의 그림자이고, 다른 하나는 그들이 숨기는 딸의 그림자이다. 두 그림자 사이에선 아버지의 욕망이 숨겨진다. 욕망은 단순한 성욕이 아니라, ‘나의 것’에서 ‘남의 것’으로 넘어가는 순간의 두려움, 그리고 그 두려움과 섞인 흥분이다.
마지막 문장, 문 앞에 선 너
문 앞에 서 있다. 침묵한 발밑에서 무언가가 흔들린다. AI가 만든 그 그림자는 화면 속에 갇혀 있지 않다. 그것은 네 눈동자 안에 이미 깊이 새겨져 있다. 이제, 네 딸이 아침마다 “아빠, 오늘 뭐 입고 나가지?” 라고 물을 때마다, 네 시선은 문고리를 잡은 채 떨고 있다.
눈을 감아도, 그림자는 사라지지 않는다.
문을 열어도, 아버지의 눈은 닫히지 않는다.
그것이 이 시대 아버지들이 맞서야 하는 가장 고독한 전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