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세 번은 능숙해지는 죄책감, 그 끝엔 무감각이 기다린다

결혼 9년 차 부부가 서로의 불륜을 맥주 한 캔 위에 펼쳐놓는 순간. 첫 번째 숨막힘, 두 번째 익숙함, 세 번째 무감각—그들이 잃어버린 건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 감각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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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은 능숙해지는 죄책감, 그 끝엔 무감각이 기다린다
  • 그래, 오늘은 맥주나 한 잔 하자.

유리 테이블 위에 올려진 시럽색 맥주가 눅진한 거품을 토해낸다. 민우는 아내 수진의 잔에 한 방울도 남김없이 채워준다. 둘 다 말이 없다. 9년 차 결혼 생활이 준 특권이다. 아니, 무기력이다.

수진이 먼저 입을 뗀다. "나 저번에 말했잖아. 사무실에 새로 들어온 후배랑 실수로... 한 번."

민우는 눈꺼풀도 떨지 않는다. 손가락으로 병뚜껑을 긁적이며, "그래, 나도. 디자인 외주 줬던 업체 대표. 팀 회식 뒤."

둘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약간의 숨겨왔던 불륜을 고백한다는 게, 놀랍게도 너무 쉽다. 처음엔 조심스럽게, 두 번째는 익숙하게, 세 번째는 아예 관습처럼.


첫 번째는 숨이 막혔다

처음엔 숨을 죽이고, 복도 끝 화장실에서 휴대폰 진동이 울릴 때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수진은 그날 밤 집에 들어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민우가 잠든 척하며 뒤척일 때마다 침대 스프링이 삐걱였다. 아무 말도 못 하고 샤워실 문을 닫았다. 따뜻한 물줄기가 굳은 살갗을 타고 흐를 때, 울음이 아니라 한숨이 나왔다. '이게 끝이겠지.'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두 번째는 도리어 가벼웠다

"밖에서 드실래요, 안에서 드실래요?"

카페 담당 직원이 물었다. 그녀 앞에 앉아 있던 남자, 정우는 수진이 좋아하는 아메리카노 한 잔을 건넸다. 첫 번째 실수 이후, 정우의 톡 메시지는 점점 짧고 빠르게 날아들었다. '또 만나자', '생각나', '밥이나 먹자' 같은 말들이. 수진은 대답하기 전에 3초를 세지 않았다. 어차피 한 번 해본 죄책감은 두 번째에선 반감된다는 걸 알았으니까.

그날 점심은 47분 만에 끝났다. 카페 화장실 칸에서 서둘러 화장을 고치며, 수진은 거울 속 자신의 눈이 점점 차가워지는 걸 느꼈다. 누가 봤을까, 안 봤을까. 그런 불안 따위는 이젠 부차적이었다.


세 번째는 무감각했다

세 번째 남자는 민우였다. 직장 동료 혜진과의 키스는, 오히려 수진의 불륜을 정당화하는 도구처럼 느껴졌다.

혜진은 회식 뒤 민우의 뺨을 쓰다듬었다. "오늘은 그만 가요." "...네."

민우는 대답했다. 하지만 발걸음은 혜진의 집 모퉁이까지 이어졌다. 술집 뒷골목에서 건넨 첫 키스는, 수진과의 첫 데이트를 연상케 했다. 그러나 그 감정도 1분 만에 사그라들었다. '이제 됐어. 나도 복수했으니까.' 민우는 자기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복수는 아니었다. 그저 욕망의 연쇄였을 뿐.


왜 우리는 세 번째를 멈출 수 없는가

혹시 우리는 사랑에 굶주린 걸까, 아니면 허기질 때마다 허겁지겁 먹는 것처럼 관계를 소비하는 걸까.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반복적인 불륜은 뇌의 도파민 회로를 해킹한다고. 첫 번째 불륜에서 맛본 쾌감은 두 번째에선 둔화되고, 세 번째에선 거의 사각거리는 소리만 남는다. 그래도 우리는 손을 뗄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사각거림마저도 허전한 일상을 메우는 유일한 소음이니까.

민우와 수진은 서로를 의식하지 않게 되었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도, 누가 더 많이 배신했는지도. 그런 물음은 어느 순간 핏줄처럼 굳은 습관이 되어 버렸다. 일주일에 두 번, 한 달에 세 번. 거짓말은 점차 짧아지고, 정직은 점차 무뎌졌다.


맥주 캔 끝에서 마주친 시선

"이제 끝내자."

수진이 말했다. 병뚜껄이 쩍 소리를 내며 닫혔다. 민우는 대답 대신 그녀의 손등을 어루만졌다. 잠시 떨리는 손이었다. 하지만 떨림은 곧 사라졌다.

우리는 도대체 누구를 용서하는 거야. 너를? 나를? 아니면 그냥 관계라는 덫을?


맥주 두 캔이 비었다. 유리 테이블 위에는 링 모양의 물 얼룩만 남았다. 그 고리 안에 비친 민우와 수진의 얼굴이 겹쳐 있다. 아무 말도 없다. 다만, 세 번의 불륜이 남긴 공허함이 방 한가득 응결되어 있다.

당신은 아직 몇 번의 배신을 더 견뎌낼 수 있을까. 아니, 정말로 한 번만이라도 용서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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