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 47분, 침대 한복판에 누운 나는 그의 손끝을 느꼈다. 손가락 하나가 허리띠 안쪽으로 미끄러지며 살을 눌렀다 떼는 순간, 숫자 48이 이마에 새겨졌다. 48. 발가벗겨진 계약서였다. 그는 말하지 않았지만, 말은 이미 끝났다.
그날 이후, 숫자 48은 피부 밑으로 잠입해 심장마다 한 번씩 뛸 때마다 되뇌어졌다. 나는 몸무게계 위에 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숫자는 내 안에서 자라, 살 한 톨이 붙을 때마다 차곡차곡 쌓였다.
고요한 뱃속, 요동치는 질투
48은 단순한 무게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랑의 영역을 가르는 나이프였다. 47.9kg 아래에 있으면 사랑받고, 48.1kg 위에 있으면 사랑받지 못한다는 날카로운 선. 그는 내 몸의 재산권을 확보하려 했다. 내가 너를 더 이상 원하지 않으면 너는 존재할 수 없어.
그의 눈빛은 불안했다. 내가 누군가의 시선에 맡겨질까 봐, 내가 존재감을 넓힐까 봐. 그래서 살이 붙는 대로 조용히 도장을 찍었다. 1kg이 늘 때마다 사랑 1g이 빠진다는 암시. 욕망은 가늠할 수 없는 사랑을 숫자로 환산하려는 시도였다. 48kg 아래에 있으면 사랑받을 수 있다는, 지독한 계약서.
민서의 2kg, 도현의 침묵
민서는 26살, 오피스룩 유튜버. 47.8kg을 찍은 날, 도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어깨에 손을 얹고 살짝 쓰다듬었다. 그 손끝에선 뜨거운 것이 느껴졌다. 한 달 후, 민서는 친구들과 떡볶이를 먹고 49.2kg으로 돌아왔다.
도현은 TV를 보며 말했다. "네가 예뻐서." 그날 이후 민서는 도현이 보낸 메시지마다 숫자를 세었다. 47.8일 때는 5문장, 31단어, 112자. 49.2일 때는 4문장, 23단어, 87자. 민서는 결국 다시 47.8kg을 향해 달렸다. 그리고 도현의 메시지는 다시 112자가 되었다.
실내화 끈을 조이는 소리
하린은 32살, 두 아이의 엄마. 남편 지훈은 그녀의 앞치마를 보며 말했다. "아기 낳기 전에 입던 바지 아직 있어?" 하린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나 웃음은 금세 굳었다. 그날 밤, 하린은 화장실에서 실내화 끈을 조였다. 너무 세게 조여서 발등에 피멍이 들었다.
누군가 나를 조여주면 좋겠다. 그녀는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너무 커졌다는 말을 더 이상 듣지 않게. 지훈은 모르죠. 하린이 매일 밤 실내화 끈을 조일 때마다, 결혼식날 자신이 신었던 하이힐을 꺼내어 맞춰보는 일. 아직도 들어가는 신발. 그러나 아무도 그녀를 그 하이힐에 들어가게 해주지 않는다는 걸.
숫자는 왜 우리를 잡아먹는가
인간은 본능적으로 측정한다. 사랑도, 미래도, 회원권도, 몸도. 48이라는 숫자는 단순한 무게가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가치를 잴 수 있는 유일한 잣대로 여겨졌다. 47.9kg에서 48.1kg로 넘어가는 200g은, 마치 0점에서 100점으로 넘어가는 결정적인 시험처럼 느껴졌다.
금기란 바로 이런 것이다. 네가 조금만 더, 조금만 덜 하면, 사랑이 사라진다는 공포. 그것은 실제로도 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숫자를 숭배한다. 숫자는 선명한 경계를 그어주니까. 47.9는 안전, 48.1은 위험. 어느 순간 우리는 사랑을 몸무계에 넣고 계산한다. 0.1kg이 늘 때마다 사랑이 1도씩 식는다는 착각. 그 착각이 너무나 강렬해서, 실제로 사랑이 1도씩 식는다.
숫자는 말했다. 너는 48kg이 넘으면 사랑받을 수 없어. 그래서 너는 47.9kg에 머무르고 싶어. 그러나 너는 왜, 왜 아직도 그의 입술이 남긴 침묵 속에서 숨죽이고 있는가? 숫자는 말했다. 그럼 너는, 47.9kg 밑으로 떨어지면 사랑받을 수 있을까, 아니면 그때는 너무 가벼워서 존재감이 사라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