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아침, 나는 시어머니가 가장 아끼던 프랑스 찻잔을 먼저 골랐다. 핑크빛 코발트가 도드라진 테두리, 파리 생제르맹 플리마켓에서 120유로 주고 샀다던 그것. 손에 들자마자 뜨거운 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이거면 충분해.
첫 번째 파편
"그릇 정리 좀 제대로 하지 못해?"
시어머니의 목소리는 싱크대에 맺힌 김처럼 끈적했다. 유리창 너머로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식탁을 닦고 있었지만, 이미 늦었다. 수건으로 한참을 문지르는데도 물자국이 남았다. 아니, 내가 남겼다.
"아직도 물자국이 남았네."
숨결이 귀뒤에 닿았다. 나는 더 세게 문질렀다. 그러다 찻잔이 손에서 미끄러졌다. 투명해지는 순간, 나는 일부러 놓았다.
쿵—
소리는 생각보다 달랐다. 누군가 목뼈를 부러뜨리는 듯한 소리였다. 유리 파편이 발가락 사이로 파고들었다. 왜 하필 그걸? 나도 이유를 몰랐다. 그러나 한번 시작하니 멈출 수 없었다.
47개의 계산법
식기장 문을 열었다. 도자기 한 벌, 접시 다섯 개, 그릇 일곱 개, 찻잔 열두 개. 시어머니의 목소리가 떨렸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대답 대신 아들랫동생 프라이팬을 꺼냈다. 3만 원짜리가 아니라, 그녀가 시집올 때 시어머니가 하사했다던 묵직한 캐스팅 제품. 나는 창문을 향해 휘둘렀다.
나는 너의 딸이 아니야. 너의 아들도 아니고. 나는 그냥 여기에 갇힌 사람이야.
유리가 깨지는 소리, 비가 실내로 들어오는 소리. 파편이 쌓일수록 숫자가 선명해졌다. 하나, 둘, 셋... 총 47개. 그만큼의 날들이 떠올랐다.
민서의 214일
민서는 32세, 결혼 3년 차. 회계사인 남편 대신 시어머니와 단둘이 아침을 먹는 날이 214일이었다.
"우리 집에서는 소금을 먼저 넣지. 네 엄마는 그랬겠지만..."
한 번도 반박하지 못했다. 그날도 민서는 미소를 지었다. 시어머니는 민서가 만든 계란찜을 한 숟가락 떠먹더니 말했다.
"요즘 젊은 애들은 간이 세."
그날 밤 민서는 화장실에서 눈물을 삼켰다. 변기 물을 내리며 속삭였다. 내가 너무 잘해서 미안해.
준영의 시험관
준영은 35세, 결혼 5년 차. 시어머니는 의사였다. 아내는 난임 클리닉에서 시험관 시술을 받았다. 세 번의 실패 끝에 겨우 임신했다.
"우리 아들이 그렇게 약한 건 아닌데..."
병원 로비에서 중얼거렸다. 준영은 그날도 웃었다. 그러나 눈가에 핏발이 섞여 있었다. 임신 5개월 차, 시어머니가 다시 찾아왔다.
"아직도 일 안 그만둬? 네 엄마 때는..."
준영은 그날 오후, 시어머니가 가져온 고기 한 상자를 모두 버렸다. 고기는 아내가 입덧으로 못 먹는 한우 등심이었다. 냉동실에서 3일을 녹였다가 다시 얼렸다.
나는 네 아들을 지키려는 거야. 너는 네 아들도 지키지 못했잖아.
욕망의 지도
아들과 엄마 사이에 끼인 여자. 혹은 딸과 엄마 사이에 끼인 남자. 이 끼어듦은 처음부터 폭력적이다.
애초에 갈라치기의 운명을 지닌 자리.
시어머니는 자기가 키운 아들을 '잃어버린'다. 며느리는 '훔쳐간' 것으로 여긴다. 반면 며느리는 자기 인생을 '빼앗긴다'고 느낀다. 양쪽 모두 자기 영토를 잃었다고 믿는다.
그래서 부수는 것이다.
도자기를, 관계를, 때로는 자기 자신을.
마지막 파편
비는 그쳤다. 식탁 위에는 47개의 조각이 놓여 있었다. 시어머니는 입을 다물었다. 처음으로.
나는 천천히 내려다봤다. 발가락 사이에 박힌 유리 조각을 하나씩 뽑았다. 피가 났지만 아팠다. 그래도 이게 더 낫지.
"이제 끝났어요."
나는 말했다. 시어머니의 눈이 흔들렸다. 아니, 내 눈이 흔들렸을지도 모른다. 찻잔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자리에 무언가가 생겼다.
공허함. 그리고 가능성.
주방 싱크대 위에 놓인 도자기를 보며 우리는 매일 질문한다. 그릇을 부술까, 아니면 자기 자신을 부술까?
그날 나는 둘 다 선택했다. 47개의 조각 속에 내 욕망과 두려움을 함께 부숴버렸다. 그리고 발가락 사이로 흐르는 피를 보며, 처음으로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