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시 47분, 모니터 꺼진 순간
새벽, 게임이 끝나고 불이 꺼지자 방은 시멘트 굳은 듯 조용했다. 3층 복도 끝, 우리 방—아버지가 지어준 ‘남매 공용 서재’였지만 사실상 침실이었다. 지아는 코를 골며 뒤척였다. 지우는 이불 끝을 턱까지 끌어올리고 있었다. 나는 손에 든 리모컨을 내려놓고 천천히 침대 옆으로 누웠다.
아래층 계단이 삐걱이는 소리가 한 번 울렸다 사라졌다. 아버지도 잠에 든 모양이다. 방 안에 남은 건 서로의 숨소리뿐. 지우가 몸을 움직였다. 손가락 하나가 이불 밖으로 튀어나와 내 무릎 위로 스쳤다. 차가운 손끝이 살갗을 간질이는 순간, 뇌는 지난 밤의 기억을 끌어올렸다.
비가 쏟아지던 날, 불이 꺼지며 맞닿았던 손바닥.
번개가 방을 밝힌 찰나, 세 사람 굳게 다문 입술.
이미 벌어지고도 아무 일도 없던 장면들이 새로 덧씌워졌다.
“형, 무서워.”
폭우 치던 밤, 정전으로 암전된 방. 우리는 셋 다 침대 위에 올라가 앉아 있었다. 어둠 속에서 빗소리가 유리창을 두드렸다. 지우가 먼저 말했다.
“형, 무서워. 손 잡아줘.”
농담 같은 외침. 그러나 손은 먼저 나왔다.
살결 위에 닿은 손바닥은 차가웠지만 엄지가 떨렸다. 10초, 아니 15초—우리는 말 없이 손만 맞잡았다. 그때 지아가 끼어들었다.
“나도 무서워.”
지아는 지우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겹쳤다. 세 손이 포개진 순간, 번개가 벽을 하얗게 밝혔다.
찰나에 드러난 얼굴들—굳게 다문 입, 반짝이는 눈—은 서로를 향한 욕망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빛이 사라지자 방은 다시 칠흑으로 돌아갔다. 아무도 손을 놓지 않았다.
생일, 치킨 냄새와 키스신
지아의 열일곱 번째 생일날, 부모님은 늦게까지 핑계를 대고 나가셨다. 테이블 위에 남은 치킨 냄새가 방안에 퍼졌다. 스크린 속 키스신이 시작되자 방 안이 희미하게 달궜다.
“형, 그것도 안 봤어? 우리 다 어른인데.”
지아가 웃음 끝에 TV를 껐다. 지우는 시트를 턱까지 끌어올리고 고개를 나에게 기울였다.
영화 끝, 불 꺼진 침대 위—누구도 몸을 떼지 않았다. 지아는 고개를 내 쪽으로 살짝 돌렸다. 지우의 무릎이 내 종아리에 살짝 닿았다가 떨어졌다, 다시 닿았다. 거기까지만. 그거리는 우리가 스스로 정한 허용선이었다.
“2시야. 너무 늦었네.”
한마디로 긴장이 풀렸지만, 나는 잠든 뒤에도 그 촉감을 떨쳐내지 못했다. 이불 속에서 발끝이 살짝 스치는가 싶으면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단 한 번도 손을 맞잡지 않았지만, 그날 밤 우리는 서로의 체온을 기억했다.
가상적 부정 합의
우리는 어릴 때부터 한 방을 썼다. 서로의 숨소리, 뒤척임, 악몽에 빠진 신음까지 익숙했다. 사춘기가 지나면서 방 안 공기만큼은 서서히 달라졌다.
허용된 거리, 금기의 거리.
그 틈새에 서서 서로를 훔쳐보는 쾌감은 합법적 포르노그래피보다 강렬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스스로 위반할 수 있다는 걸 동시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아와 지우는 친남매가 아니었다. 다섯 살 차이 나는 나는 부모님의 친아들, 지아는 엄마 친구의 딸이었다가 우리 집에 들어왔고, 지우는 아빠 친구의 아들이었다가 우리 집에 들어왔다. 세 명은 서로 다른 피를 띠고 있었다. 그렇기에 ‘남매’라는 말은 우리에게 한낱 허울이었다. 그렇기에 방 안에선 늘 새로운 규칙이 필요했다.
3시 12분, 다시 지금
지아는 고개를 내 쪽으로 살짝 돌렸다. 지우는 무릎을 굽혀 내 다리와 맞닿았다 떨어졌다, 다시 닿았다. 누구도 눈을 뜨지 않았지만, 방 안의 공기는 뜨거워져만 갔다.
만약 내가 지금 손가락 하나만 움직인다면, 어떤 세계가 열릴까?
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단지 숨을 길게 뱉으며 눈을 감았다.
우리는 서로의 욕망을 들여다보지도, 외면하지도 않았다. 그저 공존했다. 새벽 3시 12분, 침실은 여전히 고요하다. 그러나 그 고요함 속에선 무언가가 서서히 녹고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 거리를 지킬 수 있을까?
그 질문은 아침이 되면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다음 밤, 다시 같은 시간이 되면 우리는 같은 고요 속에서 같은 질문을 되풀이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고요함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훔쳐보고, 기억하고, 다음 날로 미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