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그녀 옆에서 떠올리는 거야?'
'준호는 잤나 봐. 숨소리 규칙적이네.'
수진이 이불 속에서 몸을 돌리자, 나는 핸드폰 화면을 살며시 끄고 눈을 감았다.
약 3분 전 떠올린 장면이 코끝에서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다.
지하 주차장, 차 뒷좌석, 누군가의 손이 내 허벅지 안쪽을 쓸어 내릴 때의 뜨거운 숨.
그건 수진이 아니었다.
그날의 냄새는 왜 아직도 나는지
새벽 공기는 서리처럼 차가운데, 내 몸은 화끈하게 달궈져 있어.
그 기억만 떠오르면 심장이 너무 크게 뛰어서 옆에 자는 사람이 깰까 봐 숨을 죽인다.
문제는 그 장면이 내가 만들어낸 가공의 환각이라는 점이다.
현실에선 일어나지 않았지만, 머릿속에선 끝내 이미 일어난 일처럼 선명하다.
그래서 더 걸레처럼 느껴진다.
이름 하나, 도경
도경은 수진의 절친이었다.
우리 부부와 한 달에 두세 번, 와인 한 병씩 기울이며 수다를 떨던 사이.
그녀는 말했다.
"당신은 눈빛이 너무 직접적이야.
그래서 상대가 뭐라도 벗게 될 것 같은 착각이 들어."
나는 그 말을 농담으로 받았다.
하지만 그날 이후 머릿속에선 도경이 화장실 가는 길, 부엌으로 가는 길, 현관에서 신발 끈을 고치는 모든 순간을 몰래 촬영한 듯 저장했다.
그녀가 들어왔던 날
11월 어느 금요일, 수진이 밤샘 근무를 한다며 펜션 열쇠를 건넸다.
집엔 나 혼자. 도경이 와인 두 병을 들고 문을 두드렸다.
냉장고 앞에 섰을 때
"여기… 냉장고 불빛이 너무 뜨거워 보여요."
"뜨거워? 냉장고 불빛이?"
"네, 얼굴이 다 붉어졌잖아요."
우리는 웃었지만, 0.5초 동안 숨을 멈췄다.
그 찰나가 머릿속에서 6개월째 확대 재생된다.
왜 그 순간에 이끌리는가
‘금기’는 단순히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아니라, 해도 되지만 절대 들키면 안 되는 일이다.
인간 뇌는 들키지 않는다는 확신이 생기는 순간, 보상 회로를 최대치로 핀다.
또다른 연구는 이렇다.
숨겨진 욕망이 발현될 때마다 도파민은 죄의식만큼이나 폭발적으로 분비된다.
그래서 우리는 더 더러워질수록, 더 뜨겁게 떨린다.
3시 47분, 다시
수진의 숨소리가 깊어졌다.
나는 서서히 손가락을 아래로 내려, 머릿속에서 도경의 손등을 다시 만진다.
그래도 너는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자위하지.
하지만 머릿속에선 이미 수십 번 끝났지.
새벽 공기가 차가울수록, 벌레처럼 기어오르는 환각은 더 뜨겁다.
그대도, 오늘 밤 그날을 되풀이하나요?
당신도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본 적이 있나요.
눈을 감은 채, 입을 살짝 벌린 채, 절대 흔들림 없이.